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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ic analysis of AOL us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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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플리오스는 아들 팔라메데스의 죽음을 보복하기 위해 그리스 왕들이 트로이 여인과 재혼하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립니다. 아가멤논의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 디오메데스의 아내 아이기알레이아, 이도메네우스의 아내 메다는 이 때문에 간통을 저질렀다고도 합니다.
아킬레우스의 포로 브리세이스의 이름은 단순히 '브리세우스의 딸'이라는 뜻으로, '힙포다메이아'라는 이름이 본명이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비슷한 경우로 '크뤼세스의 딸'이라는 뜻의 크뤼세이스는 '아스튀노메'라고도 불립니다.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는 헤르미오네와의 결혼을 둘러싼 분쟁으로 인해 오레스테스에게 살해되었다는 설 이외에,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서 아버지를 죽게 한 아폴론을 모욕했기 때문에 사제들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필록테테스는 본래 트로이 전쟁에 참전할 예정인 영웅이었지만, 항해 도중에 물뱀에 물린 상처가 낫지 않는데다 심한 악취가 났기 때문에 섬에 버려지게 됩니다. 그는 뛰어난 궁수로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대 아이아스의 이복동생 테우크로스는 뛰어난 궁수로 트로이 전쟁의 여러 전투에서 형과 함께 활약했습니다. 『일리아스』에서 제우스가 헥토르를 보호하기 위해 테우크로스의 활 시위를 끊어버리자, 그는 활을 거두고 창을 사용해 싸웁니다.
If you dont succed troy,troy,troyy. hahaha #trojanWar #Mr.Peabody&Sherman
트로이의 우군으로 참전한 아이티오피아의 왕 멤논을 죽인 아킬레우스는 패주하는 트로이군을 성문까지 추격하지만, 헥토르가 죽기 직전에 남긴 예언대로 스카이아이 문에서 아폴론이 인도한 파리스의 화살을 맞아 죽게 됩니다. (아르크티노스, 『아이티오피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고향 살라미스로 돌아간 테우크로스는 이복형인 대 아이아스와 함께 돌아오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버지 텔라몬에게 의절을 당합니다. 이로 인해 추방된 그는 퀴프로스에 정착하여 고향의 이름을 딴 도시 살라미스를 세웠습니다.
아킬레우스와 데이다메이아는 여장 에피소드가 유명하지만, 트로이로 가던 그리스 함대가 풍랑으로 뿔뿔이 흩어졌을 때 아킬레우스의 배가 스퀴로스로 떠밀려왔고, 이때 데이다메이아와 만나 결혼했다는 설이 더 오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스타시노스, 『퀴프리아』)
소 아이아스와 캇산드라의 사건은 일반적으로 '아테나에 대해 저지른 불경죄' 정도로만 지칭되고, 그 내용도 아테나 신전에서 탄원하던 캇산드라를 끌고 나오는 장면만이 주로 묘사되며, 캇산드라를 겁탈했다는 설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작품은 극히 일부입니다.
트로이 전쟁 중에 아킬레우스가 뤼르넷소스 등 인근 도시들을 공격해 함락시켰던 것처럼, 대 아이아스 역시 프뤼기아를 공격하여 텔레우타스 왕을 죽이고 많은 전리품을 얻었습니다. 그는 이 때 노예로 삼은 왕녀 테크멧사에게서 아들 에우뤼사케스를 얻습니다.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서 불화의 여신이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간에 아름다움의 대결을 초래했다는 것은 서사시 사이클의 『퀴프리아』에서도 소개되지만,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는 글귀가 적인 황금사과의 이야기는 후대 작품에서야 등장합니다.
스타시노스의 『퀴프리아』에서는 전쟁 초기에 아킬레우스가 헬레네를 만나보기를 원했고, 아프로디테와 테티스가 둘을 밀회하게 해주었다는 것이 언급됩니다. 이후 전설에서 아킬레우스는 사후에 레우케 섬에서 헬레네와 맺어졌다고도 합니다.
si paris gwapo lang, e si achilles matapang na gwapo pa. maighaaad! 😻😻 #trojanwar
아킬레우스가 전사하자 양군이 시신을 둘러싸고 난투를 벌인 끝에 결국 그리스군이 시신 탈환에 성공합니다. 대 아이아스가 시신을 직접 짊어지고 그리스 진영까지 가는 동안 오뒷세우스는 트로이군의 추격을 저지했다고 합니다. (아르크티노스, 『아이티오피스』)
트로이 전쟁의 서사시 사이클은 8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현대에 온전하게 전해지는 작품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뿐입니다. 나머지 여섯 작품은 소실되어 요약이나 단편적인 인용으로만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일리아스』 초반에 양군은 메넬라오스와 파리스를 대결시켜 승자에게 헬레네와 그녀의 재산을 주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파리스가 위기에 처하자 아프로디테가 그를 피신시키고, 그 사이에 트로이군의 궁수 판다로스가 메넬라오스를 활로 쏘아 전쟁은 재개됩니다.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의 저자 호메로스는 이름 이외의 개인적인 기록이 전혀 전해지지 않는 인물로, 그의 일생에 관한 설은 모두 후대에 덧붙여진 추측입니다. 두 작품이 같은 작가의 것이 아니라거나, 호메로스 자체가 허구의 인물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오뒷세우스는 처자식을 버려두고 트로이로 가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광기를 가장했지만, 이를 간파한 팔라메데스가 아직 갓난아기였던 아들 텔레마코스를 위험에 빠뜨리자 어쩔 수 없이 미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아르크티노스의 『아이티오피스』에 의하면, 아킬레우스가 죽은 후 그의 어머니 테티스는 아들을 레우케 섬으로 데려갑니다. 이후 아킬레우스는 불사신이 되어 헬레네 또는 이피게네이아, 혹은 메데이아와 함께 살았다고도 합니다.
아킬레우스의 전차를 끄는 말은 총 세 마리로, 이 중 크산토스와 발리오스는 서풍의 신 제퓌로스와 하르퓌아이 포다르게의 사이에서 태어난 불사의 존재이며, 나머지 한 마리인 페다소스는 아킬레우스가 에에티온의 도시를 함락할 때 얻은 명마입니다.
@LibrarianBoi Dude, a whole horse full? they're invading. Kick them out & lock the city gates. #trojanwar
아테나의 노여움을 산 소 아이아스는 귀향길에 풍랑을 만나는데, 이 때 아테나에 의해 벼락을 맞고 죽었다고도 하고, 포세이돈의 도움을 받아 바위 위로 피했으나 "신들이 적대적이라 해도 살아 돌아가겠다"고 호언했다가 노한 포세이돈에게 죽었다고도 합니다.
팔라메데스가 배신자의 누명을 쓰고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아버지 나우플리오스는 그리스군을 찾아가 보상을 요구했지만, 아무도 그의 편을 들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하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이에 나우플리오스는 그리스군의 왕들에게 복수를 다짐하게 됩니다.
아들 팔라메데스의 죽음을 보복하기 위해 나우플리오스는 그리스 왕들의 아내들이 간통을 저지르게 만들고, 이후 카페레우스 산 정상에 불을 피워 항구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이를 본 몇몇 그리스 배들은 그쪽으로 접근했다가 암초에 부딪쳐 침몰합니다.
헬레네의 아버지 튄다레오스는 사윗감 선택에 크게 고심했는데, 선택받지 못한 이들이 분쟁을 일으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오뒷세우스가 "누가 헬레네의 남편이 되든, 그가 불의를 당하면 도움을 주겠다"는 맹세를 구혼자들에게 시키라고 조언합니다.
아킬레우스는 스튁스 강물에 몸을 담가져 발뒤꿈치를 제외한 부분이 불사신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지만, 초기 서사시들에는 그가 불사신임을 암시하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는 전투 중에 부상을 입기도 합니다.
트로이 전쟁의 서사시 사이클에 속하는 8개 작품의 집필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가 가장 먼저 쓰여지고, 다른 6개 작품들은 호메로스 이후에 일종의 후속작으로서 쓰여졌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일리아스』에서 아가멤논은 전리품으로 얻은 노예 크뤼세이스가 아내인 클뤼타임네스트라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으며 오히려 아내보다 크뤼세이스가 더 마음에 든다고(...) 공언한 적이 있습니다.
헬레노스는 트로이의 왕녀이자 예언자로 유명한 캇산드라의 쌍둥이 형제입니다. 그 역시 누이에게 예언의 기술을 배워 앞일을 내다볼 수 있었으며, 나중에 이데 산에서 오뒷세우스에게 붙잡혀 그리스군의 포로가 되었을 때 트로이 함락의 조건을 발설하게 됩니다.
RT @Farrill2036: "The Winless Trojans head into Athens" @AWebb122 this is such irony. #trojanwar
"The Winless Trojans head into Athens" @AWebb122 this is such irony. #trojanwar
hECk yA won yik yak! #TrojanWar
아킬레우스의 이름은 "입술을 젖가슴에 대지 않은 자"라는 뜻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는 테티스가 떠난 뒤 아킬레우스를 맡게 된 케이론이 사자와 멧돼지의 내장, 곰의 골수를 먹여 키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폴로도로스, 『신화집』)
아킬레우스의 유해가 묻혀 있거나 그의 혼이 살고 있다고 여겨졌던 레우케 섬은 아킬레우스의 성역이 되어 신전과 신탁소가 세워졌습니다. 이 섬은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들의 혼이 머무르는 축복받은 자들의 섬과 동일시되기도 했습니다.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는 퓌로스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는데, 이것은 아킬레우스가 여장했을 때 퓌라라는 가명을 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이름은 불의 색 혹은 밝은 색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합니다.
네오프톨레모스가 죽자, 그의 노예가 되어 있었던 헬레노스는 뒤이어 에페이로스 왕이 되고 마찬가지로 노예였던 안드로마케와 결혼합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아들도 태어났지만, 왕위는 네오프톨레모스와 안드로마케의 아들인 몰롯소스가 물려받았습니다.
아테나를 노하게 한 소 아이아스의 행동에 대해서, 『아이네이스』 등의 서사시에는 그저 캇산드라를 신전에서 거칠게 끌고 나가며 그 와중에 신상을 넘어뜨렸다는 정도만 설명되어 있지만, 나중에 신전 안에서 캇산드라를 겁탈했다는 설도 유명해졌습니다.
아킬레우스가 죽은 후 그의 무구는 오뒷세우스의 차지가 되고, 이 때 경쟁에서 진 대 아이아스는 수치를 느껴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오뒷세우스는 나중에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를 참전시키면서 이 무구를 그에게 줍니다. (레스케스, 『소 일리아스』)
『일리아스』에서 디오메데스 휘하의 부장들로 소개되는 스테넬로스와 에우뤼알로스는 디오메데스와 마찬가지로 '테바이를 공격한 7인'의 아들들입니다. 특히 스테넬로스는 디오메데스와 친밀한 관계로 묘사되며 그의 전차를 몰아 주기도 합니다.
『오뒷세이아』에 의하면,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 다음으로 아낀 전우는 네스토르의 아들 안틸로코스였다고 합니다. 그는 그리스군의 왕족들 중 가장 젊은 축에 속했는데, 『일리아스』에서는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아킬레우스에게 전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신화에 여러 이설이 존재하는 것처럼, 트로이 전쟁 이야기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작품들의 소재가 되면서 계속 내용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한꺼번에 생각하면 앞뒤 내용이 아귀가 맞지 않거나 설정이 괴상해지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오뒷세이아』에 따르면 크레테의 왕 이도메네우스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무사히 귀국했지만, 그의 아내 메다의 정부였던 레우코스가 메다와 딸 클레이시튀라를 죽이고서 왕위를 차지했기 때문에 돌아오자마자 쫓겨났다고도 합니다. (아폴로도로스, 『신화집』)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면 죽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는 아들이 징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직 소년이었던 그를 여장시키고 스퀴로스의 왕 뤼코메데스의 궁에 숨겼습니다. (스타티우스, 『아킬레이스』)
트로이는 전쟁 개시 후 10년만에 함락되지만, 9년째 시점인 『일리아스』에는 헬레네가 "고향을 떠나온 지 20년이 되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군이 집결하여 트로이에 도착하기까지 10년이 더 걸렸으리라고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는 노예로 삼은 안드로마케와 헬레노스를 데리고 에페이로스로 가서 왕이 되었습니다. 그와 안드로마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몰롯소스가 에페이로스 왕가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필록테테스의 화살에 중상을 입은 파리스는 전처인 님프 오이노네에게 상처를 치료해 달라고 간청했지만, 헬레네 때문에 자기를 버린 남편을 원망하는 오이노네는 이를 거절합니다. 결국 파리스는 죽게 되고, 이에 오이노네는 후회하며 자결하고 맙니다.
자신을 트로이 전쟁에 참전시킨 팔라메데스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던 오뒷세우스는 팔라메데스의 막사에 금을 묻어두고, 프리아모스 왕이 보낸 편지를 위조하였습니다. 이것이 발견되자 배신자로 몰린 팔라메데스는 돌에 맞아 죽습니다. (아폴로도로스, 『신화집』)
펠레우스가 받은 결혼 선물이며 나중에 아킬레우스가 사용하게 되는 물푸레나무 창은 케이론이 창대를 마련하고, 아테나가 다듬고, 헤파이스토스가 창촉을 만들어서 단 것이었습니다. (스타시노스, 『퀴프리아』)
파리스는 트로이 멸망의 원인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지만, 아이를 차마 죽이지 못한 프리아모스 부부는 왕실 양치기에게 대신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런 왕자들이 보통 그렇듯 파리스도 결국 살아남아 목동으로 키워지다가 왕가로 돌아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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